[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세 번 꽃 피는 벚꽃
높고, 외롭고, 쓸쓸하게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상하지 않을 것도 없는 안개 속을 그리워하는 중 따라나서는 지독한 자유 틈새로 나간 모반의 시간 가까이 보았던 은밀한 풍경은 별 진 자리에 투명히 자란 몸으로 피는 얼음 벚꽃 봄은 꿈으로 오고 꿈은 꿈속에서 꿈을 꾸는데 혼자이고 싶은 언덕을 배우려고 밀리고, 부서지고, 쓰러지는 겨울 나무가 추워 떱니다 바람 부는 쪽 흔들리며 가지마다 서로를 부둥키고 담 없는 갈대 숲 강가에서 달 빛도 춤추는 강물 따라 어제를 지나친 숨들이 출렁이는 배를 탑니다 꽃보다 투명한 얼음꽃 무색 물방울 맺은 가지마다 숨이 고이고, 빛이 담긴 꽃 피울 때 아찔한 봄 날 거꾸로 밀려오는 얼음꽃 향기 세 번 꽃 피는 벚꽃 내 창가엔 나무 한 그루 있다. 이사 왔던 해 심었던 작은 꽃나무다. 내 키 정도의 묘목은 30년 가까이 자라서 이제는 이층 창가에 가지를 무성하게 뻗고도 남을 만큼 훌쩍 컸다. 매해 이른 봄 하얀 벚꽃을 소담스레 피워냈다. 꽃이 진 자리마다 앵두 같은 빨간 열매를 맺어 겨우내 새들의 먹이가 되었다. 나무를 심은 지 10년 쯤 되었을까? 나무는 이유 없이 가지가 마르고 잎이 누렇게 변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 눈에 띄게 약해져 봄이 되어도 몇 가지에 듬성 꽃을 피운 후 이내 누런 반점의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말았다. 가을이 채 오기도 전에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었다. 병든 나무를 자르고 다른 나무를 심을까 생각했다. 심겨진 후 내 자리인양 키를 키우고 몸을 불리던 나무. 봄이 되면 화사한 하얀 꽃뭉치와 향기를 온 동네 선물하는 나무를 대견히 바라 보았던 나에겐 갈등의 시간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나무를 그대로 놔두고 죽은 가지를 쳐 주기로 결정을 했다. 사다리를 놓고 죽은 가지를 잘라냈다. 말없는 나무였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무는 지친 듯 힘겨워하더니 다음 해 꽃을 피우지 않았다. 약을 뿌려주고 거름 진 흙을 덮어주었지만 나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다음해 봄 나무가지에서 가느다란 가지들이 힘겹게 살아나왔다. 보답이라도 하듯이 이듬해 봄부터 나무는 가지마다 흐드러진 벚꽃 한아름과 가득한 향기를 뽐내며 겨울을 걸어 봄으로 왔다. 무려 삼 년의 진통을 이겨내고 벚나무는 다시 기력을 찿아 살아났다. 모든 나무들이 봄에 꽃을 피운다. 조금씩 피어나는 꽃 송이를 보면서 봄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빠져들곤 했다. 그런데 나무들은 한 겨울 메마른 가지에도 종종 꽃을 피운다. 눈이 내리면 가지마다 한아름 눈꽃을 피운다. 봄날에 만개한 꽃도 아름답지만, 가지마다 등처럼 매달고 오는 눈꽃은 이른 봄날의 생동감만큼이나 곱고 아름답다.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앙상한 가지 위에 내려 앉으면 그야말로 하얀 벚꽃이 핀듯한 황홀경에 빠져들곤 한다. 한겨울에 피는 눈꽃은 다른 세상을 보듯 신비하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나무는 쉴 틈 없이 풍성한 눈꽃을 피웠다. 어제는 눈대신 차가운 겨울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웠다. 햇빛에 반사된 나무가지마다 수정 같은 얼음꽃이 피었다. 보석같이 피어난 꽃들은 온통 나무를 감싸고, 나무는 빗방울을 부둥켜 꽃을 피웠다. 빛나는 얼음꽃은 햇볓에 눈이 부셨다. 환경과 시간에 따라 나무는 다른 꽃을 피웠다. 모두가 아름답고 귀하지만 얼음꽃은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무가 피워낸 숨결이고 호흡이었다. 나도 이제 겨울숲에서 걸어나와 봄이 기지개를 펴는 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벚꽃 벚꽃 한아름과 동안 나무 얼음꽃 향기